나야 축하해 너는 종교의 의미를 깨달았어
나야 축하해 너는 종교의 의미를 깨달았어
산후우울증이라서 그런갑다 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겼던 친구가 자리를 비우려고 할 때 까지는.
아직은 세상에 남아주고 있는 그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꼬 돌아오는 길에는 속으로 늘 엄마를 부르며 울게 된다. 왜일까. 절대자가 필요한 순간에 인간은 왜 엄마를 찾게 되는 걸까. 나는 왜 무신론자인가. 내 친구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인생의 굴곡을 나름 겪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엄마를 부르면서 운 적이 없었는데, 아기를 낳고 몸이 망가지고 남편은 장기 출장을 가던 그 시기에, 삼후조리 도우미가 퇴근하고 나면 울음이 터지면서 자동적으로 입에서는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차로 5분이면 족할 거리에 살고 있는 진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저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고 싶을 때 그 대상이 엄마였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1n년이 지나면서 산후우울증 이상으로 힘든 일이 생겨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모든 시간에서 엄마를 부르면서 울었던 적은 단 한 번이다. 엄마는 여러모로 여린 사람이었고 의지할 대상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십대때부터 인생 진로를 혼자 결정해와서인지, 엄마도 나를 스스로 알아서 컸다고 표현하는 것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문장이지만,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엄마를 만들었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떠나 동의할 수도 없었다.
입사지원 오백개 채우고 나면 어디 봉사활동이라도 할까.. 육체노동 하기에는 육체가 너무 비루하고 내 사무능력을 아까워하는 건 나뿐이니까.
십여 개의 회사를 다니고(퇴사 사유의 대다수는 재정악화 ㅠ) 어지간한 사무업무는 다 해본 거 같지만 육휴와 급 지장살이로 생긴 공백은 채우기 힘들긴 하다. 그치만 오늘도 힘내서 이력서 많이 냈다! 다음주에도 힘내자!
지난 대선때 민주당에 투표하고 개표방송 보면서 울면서 심상정에게 후원금 보냈던 여성들을 기억해줬으면. 지금은 이재명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투표했고, 정의당-현 민노당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동의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비판할 점이 더욱 많지만, 제 3의 진보정당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후원금을 보냈다. 민주당이 보수 정당으로 자리잡고 진짜 응원할만한 진보정당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쨌든 오늘은 안심하고 술을 퍼마실 수 있겠다. 아쉬운 점도 많지만, 오늘은 맘 졸이면서 새벽까지 버티지 않아도 되겠지. 일단 그거면 됐다..
친구 기다리는 중 썰을 가끔 찾아 읽는다. 보고 싶다고, 투표해야 하지 않냐고, 맡겨둔 표 찾아가야 하지 않냐고 문자라도 보내도 싶지만, 나중에 패턴을 풀고 쌓인 문자를 읽는 게 가족분이 되면 나때문에 더 울고 싶을까봐 오늘도 그냥 참고 있다. ㄴㄴ님 빨리 와..
비가 내린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빗소리를 듣는 게 쉽지 않다. 빗방울이 대지 혹은 구조물과 맞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높이와 구조를 갖추기 힘드니까. 지금 사는 집은 나름 저층이라 약간은 들을 수 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빗소리는 5층 빌라의 5층에 살던 시절이다. 반년도 살지 않은 집이지만, 그 시절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를 침대에 누워 듣던 기억은 여전하다.
이 빗소리를 같이 듣고 싶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밤..
코스트코에서는 병이 아닌 비닐에 담긴 대용량 와인을 판다. 5리터들이 와인 세 상자를 샀다. 이 와인을 다 마실 때 쯤이면 희망이 보였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내 생애에서 엄마에게 의존한 기억은 없다시피함에도 불구하고, 극한 상태로 내몰리는 시점이 되면 엄마를 부르며 울게 된다. 엄마란 뭘까. 내 아이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남태령의 트랙터가 서울에 들어오길, 강동구를 제외한 전국에 비가 오길, 헌재가 빨리 파면하길 바라는 밤인데
그렇지 않다면 이제 정말로 목숨을 걸고 나갈 각오를 해야겠지
냉동 닭가슴살, 알배추, 대파, 마늘, 치킨스톡, 소금 넣고 끓여 먹고 남은 국물에 물 추가하고 만두, 떡국떡, 홍게간장 약간, 소금, 계란(수란으로), 넣고 끓여 먹고 남은 국물에 물 추가하고 무, 대파, 어묵, 어묵탕용 스프 넣고 끓여 먹고 남은 국물에는 밥을 넣고 끓여 죽 해먹고 슬슬 끝낼까 한다. 체포 영장 집행도 이제 슬슬 마무리됐으면 좋겠다(아무말
나빼고 전부 다 조져주길 바라는 작은 집단이, 원하는만큼 얻게 되는 게 빠를까 모든 이들의 집단에서 퇴출되는 게 빠를까. 조금이나마 회생하고자 한다면 샤이페미니스트 이대남(이라는 게 있긴 하겠지 설마)들이 목소리를 내야할 테다. 잠재적 범죄자라고 일반화하지 말라고 욕할 게 아니라, 그들이 틀렸고 나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다.
대형 시위의 맥이 끊겼었다고? 여자들에겐 늘 뛰쳐나가고 싶은 시위가 있었다. 혜화역 시위도 탄핵만큼이나 생존을 위협받아 나서게 된 시위였다는 걸, 남자들은 외면했다. 그렇게 남자들은 연대의 경험을 잊었고 자기 자신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비 이대남을 적으로 삼으며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있다. 이 망할 나라가 아들을 우쭈쭈하며 키운 댓가를 치르는 중이다.
현재의 2030 여자에게는 있고 남자에게는 없는 것, 그것은 연대의 경험이다. 회귀해서 만난 전생의 원수라도 생리대 빌려달라면 바로 꺼내주는 것이 여자들의 생리대 연대(?)다. 한남의 같잖은 개소리를 들었을 때 무언으로 눈빛을 주고받는 것도 연대의 경험이다. 늘 이등시민으로 살아오며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본능적인 감각.
시위대의 명맥이 끊긴지 이십여 년만에 갑작스러운 운동권 양성 속성 강의가 열렸다는 기쁜? 소식에 그저 생각해본다. 이 세기 들어서 대형 시위가 없던 것도 아니지만 점점 파편화되고 잊혀지던 시대에, 갑자기 또 끌려나온 현장에 2030 세대만큼은 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건 뭘까.
남태령에 남은 트랙터가 일부 회수되었다는 것 같네요. 지켜봐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고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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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이 열렸어도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남태령에 남은 일곱대의 트랙터와, 동작대교에 갇혀있는 두 대의 트랙터와, 사당 진입한 열대의 트랙터가 무사히 출발한 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해가 지고 자정이 되고 인적이 줄어들면 경찰은 늘 폭력집단으로 변모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계엄령 당일에 국회로 가고 싶다고 느꼈던 이후로, 각 집회에의 참여 욕구는 대체로 지역 내에서 소화할 수 있었으나 오늘은 정말 남태령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저는 부산러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건가(아님)
아이폰은 6분할로 나눠서 보내면 전송 잘 됩니다!
저새끼들이 반란군이라는 걸 즉각적으로 깨닫는데 도움이 된 건 확실한 거 같죠
박근혜 탄핵 시위에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깃발 등장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또 느껴야합니까. 반가움과 분통함이 어우러지던 그 전율을 진짜로 다시 마주칠 줄은.
시발 내가 이 나이에 또 머리묶고 운동화 신고 현금이랑 핸드폰만 쥐고 시위 나가야하냐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도 못 해낸 걸 하겠다는 건가.
사람들이 다들 낡고 지쳐서 나라가 실시간으로 망하는 걸 보면서도 촛불시위 참여율이 낮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진짜로 불을 지피네. 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물대포와 피흘리는 시민들 사진에 눈돌아가서 시위 나가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명박근혜 때는, 천년만년 해먹을 거 챙기는 것 같았는데
이 정부 들어서는 무슨 뒤가 없는 사람처럼 해먹길래 진짜 거하게 해먹고 튀려나 했는데. 진짜로 멍청해서 하고 싶은 대로만 한 거였어?
징징거리고 나니 내가 아니면 못한다는 걸 절감하고 겨우 해치우고 도로 누웠다. 이제 설거지가 남았다.. 졸린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