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거 너무 귀엽다ㅠㅠ 고양이 있는 선수들에게 이거 시켜달라고 하고 싶음ㅋㅋㅋ
이런거 너무 귀엽다ㅠㅠ 고양이 있는 선수들에게 이거 시켜달라고 하고 싶음ㅋㅋㅋ
사실 기생충의 이런 접근, 그리고 아카데미상 수상 역시 운때가 좀 맞아떨어진 건데요.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68세대의 마지막 정치적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 아니겠어요. 바로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으로 말이죠. 그것은 기생충의 반성적인 측면과 딱 맞아떨어져요.
이처럼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심지어 미국적으로 아주 뼈대가 있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미국인들에게 그 정도의 호평을 받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기생충이 단순히 68세대의 문제의식에 호의적으로만 접근했으면 뭐 그냥저냥한 범작이 되었겠지만,
하지만 기생충은 보시다시피 그런, 68세대가 한때 탐닉하던 오컬트 신비주의,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엘리티즘을 지양하면서, 미국이 이룩했던 서사문학의 전범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에요.
‘내려가라’ 대신 ‘올라가라(그 조류의 명칭은 아브락사스다)’를, ‘더러워져라’ 대신 ‘나만 특별해(표식이 있또.)’를 외치는 데미안은, 아니나다를까, 이 개심한 죄인에게 열심히 악담을 퍼붓고 있는데요.
그이는 예수의 십자가 옆에 매달려 있던 죄인입니다.
하지만 미국-기독교적인 관점에서라면 역시 다르게 보여야 하죠: 성경에서 가장 먼저 구원받은 사람이 누굴까요?
말씀드렸듯 일반인들이 범죄를 그다지 안 저지르고 사는 편인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범죄성과 구원과의 연계가 심정적으로 불편하기 마련.
그에 반해 기우는 이것저것 나쁜 짓을 많이 벌이는 사람이고, 심지어 기택은 살인자죠. 도저히 양처럼 무죄한 쪽이 못 되는데요. 이건 글쎄, 염소의 침묵이라고 해야 할까.
예수는 한술 더 떠 죄가 전혀 없는 인간이(라고 여겨지고 있)죠.
한편 주홍글자의 헤스터 프린은 정말 죄가 있는 것인지 독자들에게 점점 아리까리하게 느껴지는 케이스고요.
가령 스탈링은 경찰이기 때문에 죄인은 구해주지 않을 것이에요.
여기서 기생충의 독창성은 양들이 전혀 결백하지 않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그들에 의해 더럽혀짐으로써 새 그리스도 - 팔레스타인적 의미에서나 아메리카적 의미에서나 - 가 된 것이었어요. 기택과 기우는 바로 그 이념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역시 예수가 만났던 광인들과 병자들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에요. 그들은 강박신경증 환자였고, 세상의 모순을 육화한 존재였습니다. 예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다가감으로써,
그 깜빡임은 언뜻 불가해하까지 한데요. 사람들에게 그것은 고장 또는 광적인 무언가로밖에 읽히지 않지만,
그 지하의 울음소리는 오직 눈을 깜빡이며 세상에 말을 건넵니다. 침묵 그 자체죠.
보셨다시피 기택과 기우 역시 그들과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송강호는 원래 중산계급이었지만,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 낮은 곳에 처하게 됩니다. 그이의 아들은 지하에서 그이가 보내는 메세지를 듣지요.
현실에서는 뭐 거듭날 뻔하다가 말아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가상의 영화에서는 충분한 예술적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에요.
성경의 탈을 뒤집어쓴 저 바리새인들에게 헤스터 프린은 그리스도적 모범을 보여 주었고, 그것으로 미국역사상 가장 뛰어난 서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그러면서 낮은 곳에 처하려던 남부+백인쓰레기+여성 클라리스 스탈링 역시 주인공으로 거듭났고,
저 면면들을 보면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미국인일수록 경향적으로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배타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딱 주홍글씨의 첫 장면처럼 말이지요.
얘들은 자본주의 운전능력이 리버럴들보다도 한참 못했고, 상상 이상의 자본주의-지옥을 미국인들에게 현재진행형으로 선사하는 중인데요.
그리고 차라리 관심이 없는 게 나았다 싶은 뉴-머니들은 리버럴들이 전성기를 구가시킨, 그런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불만을 타고 선거에서 이기곤 했지만,
한편 자기보다 낮은 위치의 삶에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올드머니들,
결국은 자본주의에 투항해 버리고 만 것이에요.
뭐 변명하자면, 현실의 스탈링들이 딱 그랬기 때문인데요. 성공하고 나서는 양들의 울음소리 같은 건 전혀 신경쓰지 않더라지 뭐예요. 그러니까 빌 클린턴과 힐러리 같은 인간들이 말이죠. 68세대 리버럴 선생님들은 처음에는 사회운동을 한답시고 정치를 시작했지만,
소설은 오히려 양들의 울음소리를 앞으로도 스탈링은 들을 거라고 한니발이 기대하면서 끝나는 것이에요. 어디서 이상한 걸 제가 본 모양인데 그게 왜 그렇게 설득력이 있었는지 참.
여기서 잠깐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 저는 저 위에서 “아직도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가”라는 한니발 렉터의 질문에 주인공 스탈링이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양들의 침묵의 소설 버전 엔딩이라고 그랬는데요. 확인해 보니, 그런 대목은 없었습니다…
물론 이 윤리학의 원조는 갈릴리의 예수지만, 미국은 대통령 취임 때 성경에 선서하는 미친 나라이니 지쟈쓰까지 미국적인 걸로 쳐줘도 뭐 상관없지 않나 싶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