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답답하지
왜 이렇게
답답하지
순간 눈물이 나려고 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언니는
가장 힘들었던 때나
가장 행복했던 때가 있어? 라는 질문을 했고
어제는
아주 오래전에 내가 되게 좋아했던 선배를 만났다.
기독교 신자인 지인이
찰리커크 추모 영상을 보내왔을 때
치밀어 오르던 분노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같은 시기에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는 극우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화와 토론을 하려고 했다는 말을 하며 그를 추모했기 때문이었다.
찰리커크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떤 말을 해왔는지 모르지 않을텐데.
며칠동안
약을 먹어도 못 잤는데
에든버러에서 돌아온
남자친구가 옆에 있으니까
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깜빡 잠들었다 깬 짧은 잠이었는데도
한결 나아진 기분.
지금에서야 이 글을 봤어요
맞아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기를🙏
집에 있을 때의 내가 너무 괜찮아서
나는 내가 엄살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친구가 같이 있어서
그런 거였고
어제 그가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병가 3일째,
병가중이지만 끌고 온 학폭업무는
잠시 쉬는 중.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상태가 더 안 좋은 것 같아서 약간 난감한 아침.
배고프다.
종일,
가슴에 칼을 꽂아 구멍이라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년전, 자해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고 여기저기 흉터가 남아있다.
그걸 멈추게 된 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룸미러를 떼어내 거울을 깨서 그걸로 심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부위를 찔렀는데 안 들어갔고.
그래서 손목을 긋고난 후였다.
너무너무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너무너무 화가나서 죽고 싶었던 그때의 감정과 피비린내.
작년에 나름 면밀하게 죽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살다가 변수가 생겨(?) 잠시 보류하고 사는 중인데
오늘 파도소리 들으면서 걷다보니 그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이 계절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룩셈부르크 가고 싶어졌다.
집에 오는 길에
감기약 사왔어야 했는데
엄마랑 통화하다 잊어버렸다.
며칠 잠잠하더니
다시 죽고싶다.
이대로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유통기한 지난 상품이 된 기분)
놓자니 살고 싶지가 않고.
배고파. 흑.
가지마세요오.
오늘 정말 많이 울었다.
역시 괜히 버텼다는 생각.
또 뭐가 이렇게 불안한거니.
아기 돌보는 거 진짜 힘들죠.
어제 1세 조카랑 두시간 있었는데 집에 와서 꿀잠 세시간 잤어요.
오늘은 안고 10분쯤 수목원 걸어다녔는데
팔 안 올라갑니다.
저도 이모님의 빠른 귀가를 기원합니다.
수원에 있는 광교복합체육센터 오픈한다고 했었어요
생활지도때문에
학생생활인권규정을 또! 수정중인데.
교권보호센터 상담사님이 강력 추천하셔서
병원이 아닌 상담센터에 다녀왔다.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는
상담사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잠때문에 밤이 되는 게 두려웠는데
약 먹으면 되니까
마음이 편해짐.
교권보호위원회는 불참하고
교감선생님께서 대신 말씀해주시기로.
나 찐회피형인데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사는게 힘들었어.
상담사님한테도 말했지만
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안정제를 먹고도
심호흡하며 출근했고
두통이 가라앉지 않아서 애드빌을 먹었다.
오늘 교권보호센터 다녀왔는데
잠깐 상담하면서 결국 ‘선생님 이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제가 이렇게까지 무너지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서이초 선생님이 그렇게 가시지 않았다면, 그분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조금이라도 밝혀졌다면 달랐을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상담사님도 그러셨다.
7월 18일 이후로 교사들이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있다고.